“‘비판적 지지’의 첫 번째 대상은 김대중이었다. 밝히자면, 나도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그렇게 했다. 비판적 지지론이 아닌 진보 독자 후보론을 주장하던 진영에 더 가까웠지만, 나는 망설임 끝에 그렇게 했다. 드디어 김대중은 대통령이 되었고 그에게 표를 몰아준 진보주의자들은 그의 개혁성에, 그의 개혁성을 통해 도모될 진보의 미래를 기대했다.

기대가 의구심으로 의구심이 다시 지루한 실망으로 바뀌는 데는 단지 몇 달이 필요했다. 어리석게도 진보주의자들은 보수주의자인 김대중이 진보적이기를 기대했다. 실망에 찬 그들은 말하기를 김대중이 변했다고 했다. 그러나 변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김대중은 예나 지금이나 보수주의자이며 그의 정치는 예나 지금이나 그의 이념에 충실하다.



△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노무현의 판타지에 젖은 사람들은 오늘 김대중을 잠시 접고 옛 김대중을 떠올려볼 필요가 있다. 그는 한때 오늘 노무현과는 비교가 안 될 판타지를 가진, ‘선생’이라 불리는 정치인이었다. 노무현에게 남은 질문은 하나다. 노무현은 개혁적 보수주의자인가 진보주의자인가. 지역주의에 당당히 맞선 노무현은 신자유주의에도 당당히 맞서는가?” (2004년 4월, ‘네 이념대로 찍어라’에서 중간중간 줄여 인용)

현실적 타협에도 한계가 있다

비판적 지지에 대해 글을 쓰려고 5년 전 같은 주제로 쓴 글을 꺼내 읽다 문득 처연해졌다. “김대중”을 “노무현”으로 “노무현”을 “문국현”으로 바꾼다면 새롭게 할 이야기가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물론 제도 정치란 순결한 게 아니라서 현실적인 고려와 타협이 필요한 법이다. 그러나 현실적 고려와 타협에도 하한선이 있다. 우리의 하한선은 신자유주의 반대다. 지난 10년 동안 한국 인민의 삶을 궁지로 몰아넣고 너나 할 것 없이 자본의 악령에 사로잡혀 박정희 전두환 시절에도 마음껏 뛰어놀던 아이들이 감옥의 수인처럼 학원에서 시들어가는 생지옥을 만든 건 독재도 군사파시즘도 아닌 신자유주의다. 신자유주의는 인민에게 순수한 폭력이다.

비판적 지지? 당신의 아이가 교사에게 상습적으로 매를 맞고 있는데 ‘당장 구출하려는 어리석은 생각은 버리고 좀 덜 때릴 것 같은 선생에게 맡기자고, 그게 아이를 위하는 길’이라고 한다면 동의하겠는가? 그것도 5년씩 두 번 10년을 속아놓고도? 하지만 문국현씨는 신자유주의를 반대하지 않느냐고? 과연 그런가? 그는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면서 (신자유주의의 또 다른 이름인) FTA는 찬성한다’는데 그런 모순에 빠진 태도는 스스로를 ‘좌파 신자유주의자’라고 뇌까리는 노무현씨와 뭐가 다른가? 노무현씨가 대통령이 아니었어도 FTA에 그리 우악스럽게 올인했을까?

민노당을 지지하지만 아직은 세가 적어서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 진보를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묻는다. “세가 적어서 지지하지 않는 게 아니라 당신마저 지지하지 않아서 세가 적다고는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이명박과 문국현의 차이는 한국 사회에서 유의미하다, 고 말하는 사람에게 정중하게 묻는다. “물론 차이가 있지요. 그런데 그 차이가 진보정치의 성장을 미루거나 포기할 만큼 중요한 차이일까요?”

우리에게 필요한 건 견제력

민주주의의 경험이 짧은 우리에겐 정치가 통치력만으로 이루어진다는 오해가 있다. 정치는 통치력과 견제력의 두 가지 힘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리고 한국의 민주화를 비롯한 대개의 진정한 사회 진보는 통치력이 아니라 견제력에 의해 이루어져왔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선량한 신자유주의’가 아니라 신자유주의에 대한 강력한 견제력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통해 우리는 비판적 지지란 그저 그 견제력을 없애는 선택이라는 것을, 진정한 사회 진보를 포기하는 선택이라는 것을 충분히 체험했다. 체험에서 배우지 못하는 사람,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는 사회엔 미래가 없다. 1997년, 2002년, 그리고 2007년, 그렇게 당하고도 비판적 지지의 악령을 다시 한 번 불러들이는 우리에겐, 어떤 미래가 있을까?

[타인] yours  |  2007/11/30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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