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Diary  |  2009/08/15 00:38
[일기] Diary  |  2009/08/11 21:11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푸른 하늘 밝은 달 아래 곰곰이 생각하니
세상만사가 춘몽 중에 또다시 꿈같도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담소화락에 엄벙덤벙 주색잡기에 침몰하랴
세상만사를 잊었으니 희망이 족할까


  이 노래는 우리나라 대중가요의 ‘고전’ 으로 통하는「희망가」이다. 본래 이 노래의 원형은 미국인 Jeremiah Ingalls가 1850년 영국 춤곡을 바탕으로 만든「When we arrive at home」이라는 제목의 찬송가였다.

  그렇다면, 이 이국적인 역사적 배경인 가진 노래가 어떻게 우리 대중가요의 고전이 되었을까.

  1910년 1월 23일 일본 즈시(逗子)에서, 남자 중학생들이 탄 배가 침몰하여 배에 타고 있던 12명의 남학생들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그러자 근처 여학교에서 자연스럽게 이들을 애도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고, 그 여학교 교사인 미쓰미 요코(三角錫子)가 위의 원곡에 노랫말을 붙인 것이「마시로키 후지노네」(새하얀 후지산의 뿌리 ; 眞白き富士の根)이다. 이 노래가「희망가」의 실질적인 원형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When we arrive at home」의 선율은 이미 1890년, 명치창가(明治唱歌)에「夢の外」라는 제목의 학교 창가에서도 사용된 바 있어, 동일한 노래의 선율이 1890년에는 학교 창가에, 1910년에는 애도가에 사용되었다는 점이 특이할 만하다. 이러한 연유로「眞白き富士の根」는 쓰루미 슌스케(鶴見俊輔)의 비판과 같이 일본 엔카의 번안곡이라고는 하지만 원곡 자체가 서양곡이기 때문에 이 노래를 일본 고유의 노래로 보기는 어렵다고 볼 수 있다.

  이 중 특히 애도가로 불렸던「眞白き富士の根」를 '거리의 악사' 라고 할 수 있는 엔카시(演歌師)들이 부르면서 유행가가 되고 이것이 일본 전역에 유행한 결과 우리나라에도 소개되었는데, 1920년대에는 국내에서도 망토 차림에 모자를 쓰고 바이올린을 켜면서 창가집 악보를 파는 악사, 즉 일본의 엔카시(演歌師)와 같은 이들이 등장하여 이 노래를 연주하면서 대중가요로 탈바꿈되는 계기가 된다.

  당시 이 곡은『오동나무 창가집』에는 ‘탕자경계가(蕩子警戒歌)’,『신유행창가집』에는 ‘탕자자탄가(蕩子自歎歌)’ 라는 각각 다른 제목으로 수록됐으나 가사는 모두 지금과 같다.

  1922년에 발간된『최신중등창가집』에는 ‘일요일가(日曜日歌)’ 로, 1934년에 출간된『방언찬미가』에는 ‘금주(禁酒)창가’ 라는 제목으로 가사가 바뀌어 실리기도 했다.

  민요가수 박채선(朴彩仙) · 이류색(李柳色)이 무반주 2중창으로 녹음하여 발매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1921년만 하더라도 이 일본 번안곡의 제목은「이 풍진 세월」이었다.

  이어서 1925년 민요가수 김산월(金山月)이 음반으로 취입했으나「희망가」라는 제목이 굳어지게 된 것은 1930년 국내 최초의 대중가수 채규엽(蔡奎燁)의 레코딩을 통해서였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일본과는 달리,「희망가」의 제목과 가사를 번안 · 편곡한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남아있는 자료가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당시 우리의 사회상을 고려해 볼 때, 우리 민중들 모두가「희망가」의 번안자이자, 편곡자가 아니었을까 추측할 따름이다.

  처음에는 주로 연극 막간에 불리다가 1919년 3 · 1 만세운동 물결이 지나간 뒤인 1923년 무렵부터 대중 속에 빠르게 퍼져나갔던 것으로 보이고 이 노래의 대중성과 인지도를 바탕으로 채규엽이 레코딩을 취입하였다는 전력으로 볼 때, 일제 치하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민족의 염원이 물거품으로 돌아간 뒤의 민중들의 좌절이「희망가」속에 투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 망국의 한과 실의를 달래면서 각성을 촉구했던 이 노래는 현실 도피나 퇴폐성을 나무라는 설교조의 가사 때문에 서민들 사이에서는「절망가」,「실망가」로 통하기도 했다.

「희망가」는 박정희 유신독재 시절에는 유신독재를 반대하는 저항의 노래로 불리다가 ‘왜색풍’ 과 ‘퇴폐적인 가사’ 를 이유로 금지곡이 되기도 하였다. 노래의 역사성을 반추해 볼 때, 노래 전반적으로 일본 창가풍이 강한 것은 사실이나 이 노래가 금지곡으로 지정된 배경에 시대의 슬픔이 담겨있음을 부인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희망가」가 일제강점기와 군부독재라는 암울한 시대마다 민족의 각성을 촉구해 왔다는 점에서 “희망” 의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근자에 들어 구운봉, 김종서, 시나위, 최영철, 전인권, 한대수, 장사익 등이 새로 불렀다.



                                                
참고
                                                 장유정,『오빠는 풍각쟁이야(대중가요로 본 근대의 풍경)』, 민음in, 2006
                                                 박성서,「이 한 장의 명반 - 한대수/고무신」, 스타N스타, 2006
                                                 왕성상,「다시 부르는 희망가」, 엠디저널, 2007
[문화] Contents  |  2009/08/05 17:38
















                                                                           수료작품
[일기] Diary  |  2009/07/06 12:42

*
사람들 속에서 길을 걷다 문득 나의 부재가 떠오른다.
한참을 헤매다, 날 거슬러오는 어느 타인에게서 나를 발견한다.
뛸듯이 반기며 그에게 다가서려는 순간, 소름끼치는 감정에 잠시 머뭇.
지독한 낯설음. 처음 보는 나.
그는 내가 아니다.
아니, 나는 그가, 아니다.


**
일상이 자유롭지 못할 때, 아니 정확하게는 나 자신이 나라는 인간 때문에 도저히 자유롭지 못하다고 느낄 때, 나는 종종 의식적으로나마 ‘나’ 라는 존재를 지워버리는 것 같다. 물론 ‘부자유’ 가 순식간에 ‘부재’ 로 환치될 만큼 고성능의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는 못하지만.

내가 없으면 대체 어디서 나를 찾아야 하는가.
나는 두 눈을 부릅뜨고 어딘가를 헤매고 있을 나를 찾는다.

나의 부재만이 나를 증명하는
나를 찾는 여행.

[여행] #  |  2009/06/07 17:05
[일기] Diary  |  2009/05/11 09:06
[소장] gear/USED gear  |  2009/05/04 18:20
















   작금의 나의 몸에는 나태한 지난 날의 표상이
           진득하게 들러붙어 있는 것 같다
[일기] Diary  |  2009/05/03 21:07


[일기] Diary  |  2009/04/26 00:59













고단한 하루를 겨우 마치고 돌아온 늦은 밤, 뜨거운 커피를 한 모금 물고서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나는 당신에게 물어요. 당신을 사랑해, 저 바다보다도 저 하늘보다도. 아니, 조금은 세련된 말투로. 당신 곁으로 날아갔던 건 오직 나뿐이었을지도 모르죠. 날 실어준 바람, 속삭이던 저 별들이 나를 두고 달아난 것 같아요.

[일기] Diary  |  2009/04/25 23: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