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삐용은 앙리 샤리엘(Henri Charriere)의 자서전을 바탕으로 각색된 73년작이다. (한국에는 74년 개봉되었다) 1931년 빠삐용이 포주 살인혐의로 기아나 형무소로 이송되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이 영화 자체가 샤리엘의 자서전을 토대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가 실제로 살인을 한 것인지, 아니면 영화의 표현대로 ‘결백’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빠삐용이 살아가야 했던 1920~1930년대의 프랑스는 양차 세계대전의 사이에서 전쟁의 맹아가 눈을 뜨고 있는 시기였고, 독일에서는 나치가 힘을 얻기 시작하던 시대였다. 당시 범죄자들은 급박한 시대의 흐름 속에서 사회의 짐이거나 혹은 제거되어도 무방한 존재에 불과했다. 사회는 그들을 감당할 만한 여유도, 관심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범죄자들을 악명 높은 프랑스령의 기아나 형무소로 이송한다는 것은, 프랑스령이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그들을 프랑스로부터 추방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영화에서도 주지하듯이, 프랑스는 그들을 ‘버렸다’.

사실 그 자체로 빠삐용은 모든 희망을 버릴 만 했다. 만일 그가 보다 정치적인 안목을 가지고 있었다면, 다시 말해 샤리엘이 보다 이성적으로 사회를 주시할 수 있었다면, 그는 온당히 그 희망을 버렸어야 옳았을 것이다. 프랑스 사회는 그들의 복귀를 원하지 않았고, 그들이 돌아가기에 프랑스는 너무 멀리 있었다. (기아나는 남미에 있다) ** 기아나에서 그들은 혹독하게 착취당하였지만, 사실 그들은 그리 생산적인 인력은 아니었다.

실상 빠삐용의 모태가 되는 샤리엘이라는 인물은 그리 대단한 인물이 아니다. (살인이 단지 잘못된 혐의였다 하더라도) 그는 교양 있는 교사의 집안에서 일탈한 망나니 자식이며, 잡다한 비행을 일삼다가 살인 혐의를 쓰고 기아나에 이송되어진 것뿐이다.

그 미련한 희망으로 14년간의 유배생활 동안 희망을 잃지 않고 끊임없이 탈출을 꿈꾸었던 그는, 나비처럼 푸른 바다에 몸을 던져 마침내 자유를 획득했다. 하지만, 그는 오로지 그 자유만을 간절히 꿈꾸었을 뿐. 오직 그만을 위한 자유. 샤리엘은 그렇게 힘든 자유를 얻은 후에도 죽을 때까지 그 치졸한 비행을 일삼다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자유만을, 오직 자유만을 원했던 것 같다.

그러나 영화는 그가 왜 살인 혐의를 쓰게 되었는지, 또 그가 그토록 힘들게 얻었던 자유가 어떻게 쓰여졌는지는 말이 없다. 단지 그의 집념의 유배생활만을 아름답게 그려냈을 뿐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유를 갈망한다. 그리고 빠삐용처럼 독방에 갇힌 자는 아니지만, 누구나 자신에 갇혀 있다.

샤리엘은 자유를 찾아서도 인생을 허비한 죄를 갚을 수 없었다. 여전히 그는 유죄이다.

[문화] Contents  |  2006/06/21 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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