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999년 3월 9일 화요일> 염치 - 씨네21

알고 보면 이번 스크린쿼터 파동이란 골 때리는 일이었다. 스크린쿼터는 GATT는 물론 그 후신인 WTO에서도 인정하고 있는 '문화적 예외 조항'으로 볼 때, 현재로선 어떤 '경제 논리'로도 축소나 폐지를 거론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문제가 안 되는 일이 문제가 된 셈이다. 내막은 문화 의식이 결여된 한국 공무원들이 '공정 무역'이라는 채찍과 '5억 달러 투자'(외자 유치!)라는 당근으로 꼬드기는 미국 공무원들에게 은근슬쩍 땅문서(스크린쿼터라는) 내주려다 소란이 난, '실화'보다는 '야담'에 가까운, 그런 일이었다.

영화인들은 전례 없이 단결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들이 얼마나 열정적으로 싸웠냐 하면 '자신들의 모습에 자신들이 놀랄 정도'라고 했다. 두 달이 넘게 계속된 영화인들의 싸움은 공무원들이 꼬리를 빼고 국회 결의안이 관철되고서야 일차 마무리되었다. 농성을 풀며 영화인들은 "국민의 지지를 얻는 성과를 거두"었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영화인들이 제아무리 열심히 싸웠던들 국민들이 외면했다면 결과는 전혀 달랐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이 왜 이리도 민망한가.

과연 한국 영화인들은 '국민의 지지'를 받을 만한 사람들인가. 제 밥그릇이 걸린 일에는 '자신들이 놀랄 정도'로 열심인 영화인들은 남의 밥그릇에는 어떤 관심을 보였던가. 자신들의 불행을 언제나 민족이라는 이름에 호소하는 영화인들은 정작 민족이 불행할 때 어디에 있었던가. 이번 싸움에서 할리우드 영화를 '독점 자본'으로 해석하는 참신함을 보인 영화인들은 다른 업종의 노동자들이 진짜 독점자본과 싸울 때 무엇을 도왔던가. 이번 싸움에서 한국 영화를 '민족 고유의 것'으로 해석하던 영화인들은 농민들이 신토불이를 외치며 미국쌀과 싸울 때 어떤 지지를 보냈던가. 이 나라의 유한 계급을 뺀 모든 백성들이 불행해진 구제금융 시대가 일년을 넘기고 있지만 그 동안 영화인들은 그 잘난 영화 예술로 세상의 어떤 모습을 그려냈던가. '경쟁력'을 이유로 직장에서 쫓겨나고 가정이 풍비박산이 나고 길거리를 헤매는 이 나라의 백성들이 그런 염치없는 사람들에 대해서만 '경쟁력'을 유보하는 아량을 베풀 이유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한번도 사회적이지 않던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가장 큰 사회적 혜택은 과연 공정한가.

이번 싸움을 통해 개발된 영화인들의 자기 논리가 전례 없이 정교함에도, 이번 싸움의 열기가 밥그릇에서 비롯되었다는 것 또한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일체의 이데올로기에 대해 냉소하고 일상의 우연에 천착한다는 지성파 감독까지 연단에 오르는 이변이 생길 리 있었겠는가.('정치 의식'을 초월한 듯 행동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경제 의식' 아래에 머물 뿐이다.) 나는 영화인들의 '경제 투쟁'을 비난하고 싶지 않다. 다만 그 경제투쟁이 경제투쟁에 머물지 않기를, 제 밥그릇을 지키기 위한 그들의 열정이 남의 밥그릇도 함께 생각하는 사회적 지평으로 확대되기를 바란다. 영화인들은 자신들이 경험한 억울함과 고통을 이 나라의 백성들이 겪는 보편적인 억울함과 고통 속에서 재발견하여야 한다. 영화인들은 이번 싸움을 통해 지켜낸 스크린쿼터가 오로지 영화라는 업종에만 주어지는 소중한 혜택임을, 그들의 장사가 매우 특별한 장사임을 다시금 생각하여야 한다. 그것은 산업의 문제이자 예술의 문제지만, 오히려 '염치'의 문제이기도 하다.

사족 : 이 만큼 말하고도, 내 속은 여전히 찜찜하다. 한국 영화인들이 농성장에서 함께 흘린 눈물은 모두 같은가. 영화 자본가의 눈물과 영화 노동자의 눈물은 싸움이 끝난 다음에도 연대하는가. 싸움의 성과로 얻어지는 산업적 이익은 함께 흘린 눈물처럼 공정하게 분배되는가. 한국영화인들은 같은 민족인 동시에 같은 계급인가. 한국 영화인들에게는 '상식선'의 정치의식이 필요하다.


2. <2006년 2월 7일 화요일> 그 후 7년

스크린쿼터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묻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대답하곤 한다. “7년 전에 「염치」라는 글을 썼었고 그 후 새로 보탤 이야기는 찾지 못했다.” 그나저나 ‘한국영화인들’과 ‘한국영화계’는 그 후 7년을 어떻게들 살아왔다더라..


3. <2006년 2월 8일 수요일> 그래서

"그래서, 스크린쿼터 축소를 찬성하는가?"

물론 아니다.
내 식구가 얄밉다고 남에게 넘길 수야..


※ 김규항 글을 보며 든 스크린쿼터 생각
스크린쿼터 문제에 대해서 김규항이 정책적 비판을 시도한 적은 없다. 사실 많이 회자화되었던 저 유명한 「염치」라는 글은 간단하게 말하자면, 영화인들의 얕은 정치의식에 대한 비판이다. 그러나 사회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의식은 언제나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졌고 지켜져왔다. 그동안 그들의 정치의식이 미천하고, 때로는 반동적이기까지 했더라도 지난 날만을 들추어내며 문제의 본질을 회피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김규항 뿐 아니라 최근, 졸지에 스크린쿼터 축소 진영의 대표 논객격이 된 조희문 역시 영화인의 도덕성 검증에 힘을 실었던 만큼 이제는 정책적인 비판이 필요하다. 즉, 최민식 시나리오의 진위를 판별할 수 있는 진짜 전문가의 안목이 필요한 것이다. 그의 비극적인 시나리오의 결말은 정말로 유효한가. 혹은 스크린쿼터 문제가 진실로 범국민적 위기인가 하는.

[타인] yours  |  2006/02/16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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